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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장기화에 ‘극단선택’ 시도 늘어… 실질적 예방책 필요 [창간33 - ‘코로나블루’ 극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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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2-02 16:00:00 수정 : 2022-02-02 14:4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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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무기력감 악화… 정신건강 빨간불
응급실 1곳당 1년 새 323명서 342명↑
병원비 내지 못하는 환자도 크게 늘어

환자 면담 사유 19%가 코로나 영향
그중 75%는 ‘3개월 이내 실직’ 답해
취약계층의 경제 타격 심각성 드러나

2020년 5명 중 1명 꼴로 20대 여성
다른 나이·성별보다 증가 폭 가장 커
예방·홍보 강화 제도적인 지원 필요
#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김가현(20대·여·가명)씨가 20대 절반을 바쳐온 직장을 한순간에 앗아갔다. 김씨는 20대 초반부터 스포츠센터에서 강사로 일했다.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2020년, 센터는 방문 고객이 줄어들자 인력 감축에 나섰고 김씨도 그 대상이 됐다. 우울증에 시달리던 김씨는 이를 극복하려 정신과 상담도 받았지만, 설상가상으로 지인이 자신의 신용을 도용해 큰 빚을 지면서 스트레스가 가중됐다. 그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가 응급실로 이송돼 겨우 목숨을 건졌다.

#2. 노화로 체력이 저하돼 청소노동자일을 그만둔 박준식(70대·가명)씨는 생활고가 닥치자 재취업에 도전하기로 마음먹었다. 지역 복지관 프로그램을 통해 일자리를 소개받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복지관이 문을 닫자 취업이 어려워졌고 인적 교류가 끊겼다. 고립감과 우울감이 커졌다. 가장 두려운 것은 자식들에게 짐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다행히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다.


‘코로나블루’(코로나19로 인한 우울증)가 ‘코로나블랙’(코로나19가 장기화하며 절망감과 무기력함을 느끼는 상태)으로 악화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렇게 응급실을 방문한 환자 중 병원비를 내지 못하는 이들도 크게 늘었다. 현장 관계자 및 전문가들은 팬데믹이 장기화하면서 고통받는 국민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적극적인 국민 정신건강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자살시도로 병원행…의료비 부담 못 하는 환자↑

국내 자살률은 코로나19 이후 오히려 낮아졌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2020년 사망원인 통계에 따르면 자살 사망자가 1만3195명으로 전년보다 604명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국가적 재난 시기에는 국민적 단합과 사회적 긴장으로 일정기간 자살사망이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횟수까지 줄어든 것은 아니다. 27일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 따르면 자살시도자 응급의료 지원사업 수행병원에 내원한 환자는 2019년 2만1555명(63개 병원)에서 2020년 2만2572명(66개 병원)으로 늘었다. 응급실 1곳당 내원자 수는 323.6명에서 342명으로 증가했다. 사업 수행병원이 76곳으로 늘어난 지난해엔 10월까지 2만1635만명이 방문했다. 월평균을 계산해 12월까지 추정하면 병원 1곳당 자살시도자 내원이 341.6명으로 2020년과 비슷하다.

한 응급실 의료관계자는 “현장에서 보면 자해 등 자살시도로 내원하는 환자 수에 큰 변화가 없다”면서 “오히려 환자 면담 시 코로나19를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 재난의 사회문제를 체감하고 있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한 서민 경제 타격은 자살시도자 응급의료비 지원 현황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생명보험재단의 자살시도자 응급의료비 지원 건수는 2019년 599명에서 2020년 813명으로 35.7% 뛰었다. 수행병원이 63곳에서 66곳으로 늘어난 것을 고려해도 크게 늘어난 숫자다. 지원 대상은 기초생활수급권자(의료급여1·2종), 자살재시도자, 경제적 위기에 있는 내국인 중 상담 등 사후관리 서비스에 동의한 환자다. 1인당 지원금액은 100만원까지다. 생명보험재단은 2020년 당초 책정했던 응급의료 지원사업 예산 4억원이 상반기에 거의 다 소진되면서 1억원을 증액해 총 5억원을 집행했다.

이지영 생명보험재단 본부장은 “자살시도로 내원한 환자 설문 결과 ‘코로나19 때문’이라는 응답이 19%에 이르렀으며 그중 75%는 ‘3개월 이내 실직했다’고 답했다”면서 “경제사정이 급격히 나빠져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극단적인 선택 시도가 지속해서 발생하는 만큼 이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밝혔다.

◆자살시도 급증 20대 여성, 코로나 타격 컸다

경희의료원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 간호사 A씨는 “환자 기록을 보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하는 20대 여성이 많다”면서 “다른 병원 보고를 봐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신동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2020년 응급실 내원 자살시도자 현황’을 보면 2020년 응급의료기관 66곳에 실려 온 자살시도자 2만2572명 중 20대 여성이 4607명으로 가장 많았다. 20.4%에 달하는 수치로, 5명 중 1명은 20대 여성이었던 셈이다. 이런 극단적 선택 시도가 늘면 자살률의 증가로 연결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여성의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은 2019년 16.6명에서 2020년 19.3명으로 2.7명(16.5%) 증가했다. 전체 자살률이 26.9명에서 25.7명으로 4.4% 감소한 것과 대조적일 뿐 아니라 다른 나이·성별보다 증가폭이 가장 컸다.

이민아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전체적으로 자살률이 감소한 상황에서 20대 여성에서는 증가했다는 건 코로나19가 누구에게 더 치명적이었는지를 드러낸다”며 “서비스업종이나 비정규직에 많이 진출해 있는 20대 여성의 타격이 컸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갖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코로나19로 인한 무기력과 우울감이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가 더 고비다. 전문가들은 집단 재난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하락한 자살률은 해당 시기가 지난 뒤 급증하는 경향이 있다며 위드코로나 시작 단계인 지금 적극적으로 예방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동우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재난 때는 다 같이 힘들다는 생각에 어떻게든 버티지만, K자 양극화 회복이 진행되면 회복하지 못한 층의 박탈감이 커져 자살이 증가할 위험이 있다”면서 “때를 놓치지 말고 예방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쳐야 한다”고 경고했다.

백종우 경희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살예방 프로그램, 비대면 교육 및 상담 등 장치는 이미 마련돼 있는데 몰라서 활용하지 못하는 측면이 크다”면서 “유명인의 홍보효과가 가장 크므로 정치인, 지자체장 등이 앞장서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홍보를 강화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극단선택자 재시도율 높아… 사후 관리가 더 중요”

 

‘긴 어둠의 터널 속에서 밖으로 나와 이제 세상과 마주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인하대병원 생명사랑위기대응센터에서 자살시도자 의료지원을 담당하는 강은정 상담사(사례관리자)는 지난해 말 이런 문자 한 통을 받았다. 1년 전 입원했다가 그와 수차례 상담하고 퇴원한 환자였다. 강 상담사는 이달 초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그간 내원한 환자가 너무 많아 잊고 있던 분인데, 문자를 받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며 “내가 지금 이 일을 하고 있는 이유가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정신건강 전문가들에 따르면 극단선택 경험이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보다 자살 사망률이 20배 높다. 재시도율이 높은 만큼 외상 치료 후 장기적인 정신과 치료도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 이 때문에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은 퇴원 후 지속적인 관리를 받는 데 동의한 환자에게만 치료비를 지원하고 있다.

 

치료비 지원을 받은 환자는 퇴원 후 거주지역의 정신건강복지센터로 연결돼 정기적인 상담을 받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잘 이뤄지지 않는다. 상담을 거부하거나, 신체 건강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거나, 전화를 아예 받지 않는 등 경우가 많다.

 

환자와 사례관리자 사이에 충분한 유대감이 형성되면 지역 센터로 상담이 이어질 확률이 높은데, 사례관리자가 응급실에 항시 상주하는 병원은 많지 않다는 것이 자살예방사업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강 상담사는 “사례관리자가 두 명밖에 없어 낮에만 근무할 때는 밤에 내원했다가 퇴원한 환자에게 전화하면 예민한 반응을 보이고 통화를 거부했다”면서 “인원이 6명으로 늘고 응급실에 24시간 상주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는 바로 상담할 수 있게 됐고 사후관리 동의율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례관리자 인원을 확충해 24시간 운영하는 병원이 늘어나면 사후관리 효과를 높일 수 있고 재시도율도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사후관리만큼 사전예방도 중요하다. 최근 젊은 세대의 극단적 선택 시도가 급증해 이들을 위한 비대면 정신건강 관리 콘텐츠 개발 필요성이 제기된다.

 

생명보험재단은 국내 최초 ‘마음 성장 플랫폼’을 표방하며 2020년 11월 처음 선보인 ‘플레이라이프’를 최근 재정비했다. 플레이라이프는 마음 성장 콘텐츠를 통해 청년들의 회복과 치유를 돕기 위한 디지털 공간이다.

 

이지영 생명보험재단 본부장은 “코로나19 이후 2030의 시도가 눈에 띄게 늘어 현장 관계자들이 우려하고 있다”며 “젊은 층이 집에서라도 힐링하고 리프레싱할 수 있도록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지속해서 개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김희원·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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